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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르네상스와 원근법의 탄생

by yujjjjjjjjjjini 2022. 10. 1.

'르네상스'라는 말은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재생이라는 관념이 이탈리아에서 확고한 기반을 가지게 된것은 조토(이탈리아 화가)시대 이후에 탄생하였습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시인이나 화가를 칭찬하고 싶을 때 '그의 작품이 고대의 것만큼 훌륭하다!'라고 칭송하였습니다. 조토는 이렇게 미술의 진정한 부활을 유도해 낸 인물로 칭송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이탈리아에서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인들은 먼 옛날에는 로마를 수도로 한 자신들의 나라가 문명 세계의 중심이었는데 고트족과 반달족 같은 게르만 종족이 침입 해와서 로마 제국을 붕괴시킨 이 후 그 권세와 영광이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인 들의 마음 속에 부흥이란 관념은 '위대했던 로마'의 재생이라는 생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고전 시대와 그들이 이제 희망하는 재생의 새로운 시대 사이에 놓인 기간은 단지 하나의 슬픈 '중간 시대'에 불과 했습니다.

이렇게 재생, 즉 르네상스라는 관념은 그 중간의 시대가 '중세'라는 관념이 만들어 지게 되었고, 지금도 우리는 그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고트 족 때문에 로마 제국이 몰락 했다고 생각했으므로 마치 우리가  아름다운 물건들을 쓸데없이 파괴하는 짓을 가리킬 때 반달리즘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러한 중간 시기의 미술을 고딕미술이라고 부르며, '야만적'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탈리아인 들의 이러한 생각은 실제 역사의 흐름에 대한 거칠고 단순화된 상활 파악에 불과할 뿐 근거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트족이 로마침입으로부터 지금의 고딕 양식으로 부르는 미술이 생기기 까지는 약 7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미술의 부활이 암흑 시대의 혼돈 뒤에 서서히 진행되어 오다가 고딕 시대에 들어서야 급속히 이루어졌습니다. 이탈리아는 다른 지역보다 낙후 되었기 때문에 북쪽에 사는 사람들보다 미술의 이러한 성장과 개화를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토의 새로운 업적들이 그들에게는 엄청난 혁시은으로 보였고, 예술에 있어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모든 것이 부활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14세기 이탈이라 사람들은 예술과 과학, 학문이 고전 시대에 번창 했었으나, 모든 것들이 거의 다 북쪽의 야만인 들에게 의해서 파괴 되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이러한 영광스러운 과거를 다시 부흥시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자신감과 희망이 다른 도시보다 강하게 나타는 곳은 단테와 조토의 출생지 이며 부유한 상업 도시 '피렌체'  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15세기 초 미술가들이 계획적으로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고 과거의 미술개념에서 탈피하고자 시도했습니다. 

피렌체의 예술가 집단의 지도자는 건축가인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이었습니다.  당시 브르넬레스키는 피렌체 대성당을 완성시키는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는 구륭형 천장을 만드는 고딕 식 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새로운 교회나 다른 건물의 설계를 요청받았을 때 전통적인 양식들은 모두 버리고 로마의 영광이 부활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시안을 채택 하기로 결심 하였습니다. 그가 목표 하였던것은 새로운 건축 방법의 창조였으며, 그러한 의도 내에서 고전 건축의 형식들을 새로운 조화와 미를 창조하는 데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보면성당을 거대한 돔으로 덮을 때 돔을 받쳐주는 기둥 사이의 거대한 공간을 덮는 불가능했을 구성과 설계를 완성시켰습니다. 그 뒤로 500년 가까이 유럽과 미국의 건축가들은 그의 발자취를 따랐습니다.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의 명문가인 파치(pazzi)가를 위해서 지은 작은 예배당 <파치 예배당>을 보면 한눈에 이 건물이 고전적인 신전과 공통점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고딕 건축가들이 사용했던 형식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브루넬레스키는 원주와 별기둥, 아치를 자기 방식대로 결합하여 그 이전의 건물과는 전혀 다른 경쾌하고 우하한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고전적인 박공을 가진 문틀과 같은 디테일을 보면 브루넬레스키가 얼마나 고대의 유적들을 연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파치 예배당>의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가 내부의 형태와 비례를 강조하기 위해 건물의 구조상 실질적인 기능을 하지 않기만 고전기의 기둥 약식을 본뜬 회색 벽디둥들이 아무 장식도 없는 흰 벽을 구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건축 설계를 보면 그가 로마의 형식들을 어떻게 연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브루넬레스키는 르네상스 건축의 창시자 만으로 그치지 않고, 미술 영역에서도 또 하나의 획기적인 발견으로 수백 년 간 미술을 지배했던 원근법 또한 그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됩니다. 단축법을 이해했던 그리스 미술가 들이나 공간의 깊이를 능숙하게 표현 하였던 헬레니즘 미술가 들 조차도 물체가 뒤로 물러갈수록 수학적인 법칙에 따라 크기가 작아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미술가 들에게 이러한 문제를 수학적으로 해결하는 수단을 제공해준 사람이 브루넬레스키였습니다.

이후 '마사초'의 ,<성  삼위 일체, 성모, 성 요한과 헌납자 들>에서 마치 벽에 구멍을 뚫은  듯이 보이는 원근법으로 많이 이들이 얼마나 놀랐을 지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마사초가 인물들을 원근법적인 틀 아래 배치 함으로써 인물상 들이 조각상처럼 보이는 효과로 마치 그들을 만져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들게하였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들 에게는 미술에 새로운 방법과 발견으로 그 주제가 갖는 의미를 보는 사람이 보다 친근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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